예술/작가 소개

"검은 피카소, 장 미쉘 바스키아" 그는 누구인가?

장 미쉘 바스키아

검은 피카소, 또는 미국의 고흐라 불리는 장 미쉘 바스키아.

 

하지만 나는 바스키아는 바스키아 하나의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그는 항상 내면에 분노를 담고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27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2500점의 작품을 남긴 비운의 천재, 장 미쉘 바스키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생: 1960년 12월 22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사망: 1988년 8월 12일 

 

미국의 현대 미술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작품에는 해골, 왕관등을 많이 그리고 사용했던 기호들을 다시 사용하여 작품을 리믹스한다.

 

어린 시절 나름 유복하게 생활했는데,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입원하고 병원에서 인체 해부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습니다.

 

인체 해부를 보며 감명을 느낀 바스키아는 작품에 해골이나 장기 등을 넣기 시작합니다.

 

낚시

그는 17살의 나이에 다니던 학교에 자퇴하고 예술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시절 어울리던 친구들과 흔해빠진 것이라는 뜻의 "SAMO"라는 크루를 만들게됩니다.

 

SAMO는 여러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에 작품을 하기 시작합니다.

 

뉴욕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은 SAMO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로 스타가 되고 싶은 바스키아와 익명의 화가로 남고 싶은 친구의 가치관 차이 때문입니다.

 

그 후 그들은 "SAMO는 죽었다" 라는 문구와 함께 활동을 중단합니다.

검둥이 경찰의 아이러니

그가 살던 시대에는 인종차별이 심했는데요,

 

부모님의 이혼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의 분노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듭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길거리 문화인 힙합과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유명해지고 있던 그는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됩니다.

 

바로 1980년 당대 최고의 스타화가였던 "앤디 워홀" 과의 만남이죠.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 "팩토리"를 바스키아에게 언제든 이용 가능하게 하고,

 

천재적인 마케팅으로 단숨에 바스키아를 예술계의 스타로 만듭니다.

 

몸값이 계속  오르던 바스키아는 어느새 앤디 워홀보다 비싼 작품도 만들게 되고,

 

오히려 그 유명세로 인해 심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주변에서 시기와 질투를 받고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의 동성 연애중이다" 등등 이상한 논란이 생깁니다.

 

1987년 워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먹은 그는 결국 약물중독으로 2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